생각해보니 그랬었다
내가 개발자로 처음 입사하게 되었을 때, 수습기간 동안은 멘토-멘티 제도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사수와 부사수 관계와 다를 게 뭔가 싶지만, 튜터와 튜티의 관계도 어느 정도 녹아 있다는 점 정도가 다르지 않을까? 아무튼 내 멘토님은 지금 다른 기라성같은 대기업에 계시지만, 돌아보니 영향을 참 많이 받았다.
입사 직후, 회사 비즈니스도 모르고, 담당 제품에 대해서도 모르고, 심지어 React, Next를 배웠던 나에게 Vue, Nuxt 코드가 눈에 들어올 리도 없었다. 멘토님은 야근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나는 야근을 자처하며 뭔지 모르는 코드를 열심히 눈에 담으려 했다. 그렇게 일과 잠의 두 축만이 가득하도록 스스로를 만들었다.
멘토님은 참 재미있는 분이셨다. 같은 제품을 다루었지만 다른 스쿼드였다. 도움 주길 자처하지도, 마이크로매니징도 않으셨지만 방치하지도 않으셨다. 일상 얘기도 하셨고, 게임 얘기도 했고, 산책도 하고, 이전 직장 얘기도 가끔 해주셨다. 나는 우리 회사에서 프론트엔드로 일하는 방법, 문화를 배웠지만, 개발자로 일하는 건 아예 처음이었다. 나는 컴퓨터공학과를 나왔거나 멀쩡한 팀 프로젝트도 경험도 없다. 그 새에서 나는 온보딩 프로젝트도 별도로 없었고, 그대로 기한이 정해진 대규모 프로젝트의 중간에 스쿼드원으로써 바로 투입되어야 했다. 복잡하고, 어렵고, 압도당했던 것 같다.
실수도 있었고, 생각은 계속해서 깊어졌다. 데드라인으로부터 1/3이 남은 시점까지도 거의 진도를 나가지 못했는데, 그 때에 했던 생각을 떠올려보면 참 암울하다. 내가 과연 홀로 해낼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퇴사하는 것이 나와 회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닐까? 당시의 팀장님과 멘토님 얼굴을 어떻게 봐야할까? 그러나 거짓말같이 데드라인으로부터 1/3이 남은 시점 즈음, 그 때도 홀로서고 있었지만, 알이라도 깬 듯이 구현을 쳐냈다. 다시 생각해봐도 신기한 일이다.
릴리즈 후 회식때 팀장님은 진도를 못 빼고 있던 얘가 깨달음을 얻은 건지, 갑자기 벽을 부쉈다고 말해주셨다. 나 스스로도 그 때 그런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다. 이건 꽤 낯선 감정을 만들었는데, 내 면접에 멘토님, 팀장님이 면접관으로 들어오셨었고, 팀장님은 내 블로그에 올라온 글도 전부 보셨다고 하셨고, 내가 자신감이 없고 불안해보일 때마다 ‘너 정말 공부 많이 했다’며 자신감을 가지라고 하셨지만, 나는 그때마다 반신반의했었다. 내가 비전공자고, 출신 부트캠프나 학원도 없고, 엄청난 프로젝트 경험이 없다는 걸 아셨을텐데, 대학교 4년의 전공을 위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도 변변한 취업이 얼마나 어려운 건데-그 사람들이 어리석지도 않고, 어리석은 노력도 아니지 않은가?
나는 시간이 지난 뒤 그 때를 회상할 때마다, 그 어떤 어려운 프로젝트와 챌린지도 그때처럼 ‘내가 할 수 있을까?’ 수준의 압도당하는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첫 프로젝트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이후 멘토님도 내가 첫 부사수-멘티였고, 그래서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디렉팅해주면 좋을지 참 어려웠다고 말해주셨고, 나에게는 그 방식이 잘 맞았는데, 그래서 참 다행이고 잘 적응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어떤 커뮤니티도 인맥도 없이 홀로 배우고 깨져가면서, 방구석에서 키보드만 두들겨가며 개발자가 되었고, 업계에 진입했다. 짧지 않았고, 간단하지 않았고, 그럼에도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알리지도 않았다. 그렇게 진입 후에도 아는 사람 하나 없고, 속한 커뮤니티 하나 없었다. 그렇지만 운이 좋게도, 팀장님과 멘토님이 추구하시던 삶의 가치는 상이했지만, 나는 개발자로서 추구할만한 모습을 배울 수 있었다. 그것은 기술도 있었고, 똑똑하게 일하는 법, 직장인으로서의 개발자, 개인과 조직 사이에서 균형 잡기, 개발 문화와 팀 빌딩, 내가 따라갈 좋은 시니어와 리드의 모습까지.
각 관계의 깊이는 중요하지만 그보다 나와 관계하는 사람들이 끼치는 영향은, 지나고보니 더 컸음을 직감한다. 의지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좋다. 그렇지만 의지적이지 않고 명시적이지 않았던 이런 경우도 선한 영향력이 아닐까? 그때는 막내였지만, 지금도 막내지만, PO의 역할도 겸하며 나보다 대단한 사람들에게도 방향을 주고 있는 요즘을 보니 관계의 중요성과 파급효과를 되감아보게 된다.
개발자로 시프트를 준비하던 2년, 처음으로 개발자가 되어 회사를 와서의 2년. 나는 개발자가 되었다는 하나의 굵은 목표를 이뤄내고도 아무도 시키지 않은 노력을 자처했다. 그래서 그걸 알아보는 사람들이 내게 찾아와준 걸까, 내가 그런 위치에 도달해 교류할 수준이 된 걸까. 무엇이 옳았는 지는 알 수 없다. 스스로에게 떳떳해지고 싶다며 아둔하고 미련하게 홀로서고자 했었고, 그것이 남겨준 건 스스로에게의 증명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그 덕택인지 이후의 나는 큰 행운으로 돌려받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 그 때의 팀장님과 멘토님은 떠나 곁에 계시지 않지만, 팀장님은 직업인으로서, 멘토님은 사람으로서 내 평생의 롤모델 중 하나가 되셨다. 나는 요즘 꼰대같지만 가끔 동생에게 그런 얘기를 한다. ‘사람은 혼자 있을 때, 힘들 때 성숙해지지만, 그렇다고 그런 고생의 형태로 살 필요는 없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