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지적 유희
커오면서 지적 유희에 대한 갈망이 있음을 깨달았고, 그 이후로는 지식 노동자로서 나만의 해자가 뭘까에 대해 고민했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짧게나마 '현장'의 경험을 쌓았던 나는, 지식 노동이야 말로 내가 열심히하는 만큼 세상을 바꿀 수 있고, 시공간의 제약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우며, 업사이드도 열려있다고 느꼈다. 다만 진입 장벽의 높이도 그만큼 열려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일을 준비하며 이 사실을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기억할 수 없으나, 그럼에도 이 업에서 24개월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흘러왔다.
아이러니하다. 대학교를 떠나며 ‘왜 가르치는 직업은 있는데 배우는 직업은 없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당시엔 그것이 학자의 길을 걷는 것이 유일하다고 여겼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런 지적 유희를 합법적으로 즐기는 일을 갖고 있다. 원하는 방향의 호기심을 해소하는 것은 가끔이겠지만.
그렇지만 실제로 마주한 이 일은 지적 유희와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사실도 배웠다. 그렇지 않으면 ‘비즈니스’의 문제들을 정의하고 푸는 데 있어 스스로를 터널 시야에 가둬버렸다. 다만, 그 지적 유희를 탐하는 호기심은 장기적으로 볼 때 나를 이 필드에 남아있을 수 있도록 한 원천 에너지가 되어온 것 같다. 역설적인 지속 가능성이다.
아무래도 나는 이 필드가 재밌다. 기술과 경영과 경제 사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이 필드에서 오래도록 남아있고 싶다. 새삼 크고 작은 생활 양식 속 변위를 이끌어내고, 서비스마저 대명사화시킨 카카오, 배달의 민족 초기 개발자들이 떠오른다. 꿈만같을 일이다.